소문과는 다르게 딱히 위악적인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되레 친절하기까지 한 태도의 유즈 릴렌이 말을 걸어 왔습니다.
모두 판에 박힌 듯 고루하기 짝이 없는 스태그필드에서 유일하게 돌출된 존재인 유즈가 당신의 룸메이트가 된 것은 고작 세 시간 전입니다.
새로운 룸메이트가 발표된 이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 당신의 짐이 모두 정리가 된 지금에야 방문을 벌컥 열더니, 반갑다, 잘 부탁한다는 인사도 없이 대뜸 꺼내는 말이란 저런 것입니다.
이 학교 설립자가 미친놈이었다고요?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딱히 놀랍지는 않습니다.
감옥과 흡사한 구조의 이 기숙사 학교는, 학생들을 보호한다기보다는 되레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것 같습니다.
학교의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철창 울타리는 조금 안쪽으로 굽은 데다가 그 끄트머리가 살벌할 정도로 뾰족합니다.
자살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좁게 짜인 창문으로는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어떤 구석은 한 번도 그림자가 벗겨진 적이 없습니다.
오래된 석조 건물에 달라붙은 이끼들은 구더기 떼처럼 우글거립니다.
남쪽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 학교는 바람의 무덤입니다. 대륙에서 시작된 온갖 바람들이 소금기 묻은 살점을 떨어뜨리고 마침내 죽는 곳.
온갖 곳에서 묻혀 온 수십 갈래의 냄새가 엉키고, 매일 밤 살벌한 바람 소리가 창을 뒤흔듭니다. 바람에 실려 온 모래들은 따가운 야유처럼 학생들의 몸에 날아와 박힙니다.
이런 곳에 학교를 세운 설립자가 제대로 된 사람일 리 없잖아요.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전, 유즈의 모습이 당신의 눈에 들어옵니다.
소티스 다이앤:관찰력| 기준치: | 80/40/16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불, 옷가지, 세면도구를 비롯한 어떤 물건도 챙긴 것 같지 않습니다.
대신 책 한 권을 덜렁 손에 들었을 뿐입니다.
제목은 「프나코티카」. 처음 보는 책입니다.
기숙사 방을 옮기는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단출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유즈의 옷매무새는 학칙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듯합니다.
삐져나온 셔츠와 채 잠그지 않은 단추, 주머니에 불룩 튀어나온 담배까지. 넥타이핀은 또 어디에 버렸나요? 학칙에 따르면 언제나 착용하게 되어 있는데…….
하기사 저치의 품행이 방정치 못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학교 제일의 골칫거리라는 별명이 허명은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유즈와 함께 살아 갈 301호에서의 3개월이 녹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소티스 다이앤:(그다지 어울리고 싶지 않았는데, 말을 걸어오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몰라. 놀랍지는 않은데. (널 향했던 시선이 도로 읽던 책으로 돌아간다. 무던히 대답했다.)
유즈 릴렌:(네 답에 미소 짓곤 어깨를 으쓱인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나? (방 중앙까지 걸어오며, 책을 펼쳐 종이 조각을 꺼낸다.) 이 학교 학칙을 봐. 말도 안 되게 빽빽하잖아. 편집증 환자였을 게 분명해.
소티스 다이앤:(네가 꺼낸 종이 조각을 본다. 저 역시 학칙을 보며 유독 까다롭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키지 못 할 것도 아니다. 네 차림새를 한 차례 훑어본다.) 하지만 넌 하나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상관 있어?
유즈 릴렌:하하. 가장 최악인 건 이 부분이지. (학칙 제 4항을 읽어내린다.)
‘제 4항. 기숙사 내 이성의 출입을 금지합니 다. 또한, 동성 교제를 금지합니다.’
소티스 다이앤:(표정이 어두워진다.) 금지하지 않았다면? 여자애라도 들일 생각이었어?
유즈 릴렌:그랬으려나. (마찬가지로 네 모습을 관찰하듯 훑어본다. 적당한 대답을 한 뒤, 곧장 화제를 뒤바꾼다.) 얼마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
제 4항의 추가 조항들이 있더라고. 기숙사 사감들을 위한.
소티스 다이앤:(이참에 룸메이트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 한 마디 해 두고 싶었으나 금세 화제를 뒤바꾸는 탓에 할 수 없었다. 불만스럽게 고개를 돌린다. 추가 조항...?) ...그게 뭔데.
유즈 릴렌:궁금해? (네가 관심을 보이자 즐겁다는 듯 웃는다. 갖고 있던 종이 조각을 네게 건넨다.) 읽어봐.
소티스 다이앤:(종이에 쓰인 내용에 미간을 좁혔다. 제물이니 뭐니, 마치 장난 같은 내용에 네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미심쩍은 얼굴로 너를 흘겨본다.) ...정말 학칙이 맞아? 재미 없으니까 이딴 장난 치지 마.
유즈 릴렌:그것이 있다잖아. 그것이. 편집증 환자가 보이는 전형적인 망상이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악마가 있고, 그것이 우리를 노린다는……. (마치 싸구려 괴담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가벼운 미소를 짓는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재미있지 않아?
소티스 다이앤:(이야기 하는 걸 보니, 나를 놀리려는 의도는 아닌 듯 싶다.) 할 일 없는 도련님들 중 하나가 지어낸 허풍이겠지. 이런 헛소리의 어디가 재미있다는 건지. ...이 종이는 어디서 주워온 건데?
유즈 릴렌:흐음, 그런가. 도서관 책에 끼워져 있던 거야. (이번에는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흥미가 식었다는 듯 왼쪽 침대맡으로 향한다.) 왼쪽 침대는 내 침대야.
소티스 다이앤:그러시던지. (어이가 없어 헛웃는다. 도서관 책에 끼워져 있던 거라면 더욱 누군가의 장난임이 분명했다.) 릴렌. 그런 허무맹랑한 일들에서 재미를 찾을 시간이 있다면 공부나 하는 게 너에게 이로울 거야.
유즈 릴렌:내 걱정 해주는 거야? 기쁜데. (그렇게 말하며 침대를 가리킨다.) 너무 그러지 마. 이쪽 침대는 내가 계속 사용하던 침대거든.
소티스는 지금까지 계속 방을 바꿔야 했는데 유즈는 방을 바꾸지 않는 행운을 누렸나 봅니다. 운이 좋은 몇몇 학생들은 전 학기에 이어서 같은 방을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소티스는 이미 자신이 방을 옮길 때부터 유즈의 짐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소티스 다이앤:...누가 걱정을 했다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관자놀이를 주무른다. 앞으로의 매일이 피곤해질 것이란 예감이 든다.) 운이 좋았나 보네. 말해두는데, 이 방에 여자애를 들이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 내가 방에 없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야.
유즈 릴렌:아하하. (경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 우리도 앞으로의 규칙을 정해야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너도 적어도 새벽 2시까지는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꼭 잠에 들어줘. 해줄 수 있지?
소티스 다이앤:소란스럽게 하지 말라니, 내가 너인 줄 알아? 그건 당연한 거고, 언제 잠에 드는지는 내 자유야.
유즈 릴렌:'부탁'할게. 나한테 대드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하거든. (입꼬리만 올려 웃는다.) 앞으로 참고하도록 해.
소티스 다이앤:대든... (황당함에 말문이 막힌다. 게다가 참고하라니, 거만하고 고압적인 그의 태도에 진저리가 난다. 이래서 이 학교 도련님들이 싫었지.) 나도 건방진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부탁이라 말하니, 생각은 해보지. 너 하는 것 봐서.
유즈는 지금까지 계속 들고 있던 책을 기숙사 창문 바깥으로 집어 던집니다.
소티스 다이앤:(미친 새끼...) 책은 왜 집어던지고 지랄이신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읽던 책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던지 말던지.)
유즈 릴렌의 무례한 행동에 한 마디 중얼거리던 찰나,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벽면에 걸린 시계는 11시 49분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컬트에 다소 과하게 전념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당신에게 아주 사근사근 대해줬던 좋은 이전 룸메이트였습니다.
소티스 다이앤:버니스?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연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문을 열면 버니스가 초조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버니스:저기,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혹시 내 책 못 봤어?
짐을 옮기고 보니까 사라져 있어서. 네 짐에 섞인 게 아닌가 해서...
버니스:좀 누런 장정의 책인데, ... 맥베스. 맥베스인 것 같아. 그거 우리 문학 숙제잖아. 본 적 있어?
소티스 다이앤:맥베스... (기억을 되짚어본다.)
버니스:어, 어떡하지... 도서관에 내일까지 반납해야 하는데…….
방금 전 유즈가 창문 밖으로 책을 버리긴 했지만, 그 책의 제목은 맥베스가 아니었습니다.
소티스 다이앤:그 책을 본 기억은 없는데, 짐을 옮길 때 떨어트린 건가 보네. (방 안의 시계를 한 차례 본다. 시간은 곧 자정이다.) ...자정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우선 방으로 돌아가. 내일 아침 일찍 함께 찾아봐 줄게.